Más allá de la persecución – Pastor David Jang

2. Judea y Samaria, y la lección de la divisiónJunto con la historia de Jerusalén, otro tema fundamental del Antiguo Testamento que debemos examinar es la división del reino de Israel. Durante el reino de David, las doce tribus se unieron en un glorioso reino unificado que experimentó su mayor esplendor. En tiempos de Salomón … Read more

박해를 넘어 – 장재형목사

1. 예루살렘과 초대 교회의 역사 예루살렘은 성경 속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로 등장한다. 구약 시대부터 예루살렘은 다윗 왕국의 수도였고, 솔로몬 왕이 이곳에성전을 지었으며, 여러 왕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영광과 쇠퇴의 역사를 함께 품었다. 이런 배경을 알아야 사도행전에서 일어나는일련의 사건들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으로 불리며, 초대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던 장면(행 1:4)은예루살렘이 역사의 출발점이자 복음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는 거점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그곳을 발판 삼아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고, 3천 명, 5천 명씩 회심자들이 늘어나는 역사적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성전과 공식적인 종교 체계 안에서 편안하게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예루살렘은그리스도를 죽였던 종교 지도자들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했으며, 기독교 신앙을 가혹하게 박해하는 본거지이기도 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중심 예배에서 쫓겨나 가정교회, 즉 ‘집에서 드리는 예배’ 형태로 전환해야만 했다. 마가의 다락방 같은 장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 아닌, 집과 같은 사적인 공간을 거룩하게 구별해 예배드리며 기도에 힘썼다. 이러한 역사는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성령 안에 모여 있는 성도들의 모임임을 잘 보여준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가 거세지자,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핍박은 스데반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로서,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리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랑과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스데반의 죽음은 교회 공동체에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겼지만, 동시에 복음이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흩어짐’이라는 형태로 확장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처럼 ‘핍박’을 통해 새로운 부흥이 시작되는 역설적인 역사는 성령의 섭리와능력을 잘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를 거듭해서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성령의 능력, 복음의 능력, 그리고 희생과 순교를 통한 확장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뚜렷한 단계와 순서를 갖춘 명령으로, 복음 전파가 먼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지고, 결국은 땅 끝, 즉 모든 민족으로 뻗어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싶어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모여 있는 상태에서는 이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박해’라는 외부적 요인이 작동해 예루살렘 안에만 안전하게 머물러 있던 성도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를 두고 “하나님은 박해조차도복음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내용은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할 때 교인 수가 3천, 5천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건은 복음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예루살렘 안에서만 그 은혜를 누리고자 했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적극적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이 명하신 ‘나가야 한다’라는 사명을 실천하기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편으로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예루살렘에 머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와 이어진 박해를 통해 성도들을 흩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도행전 8장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흩어지는 교회’는 곧 ‘나가는 교회’가 된다. 나아가야 할 때를 놓쳐 머물러 있는 교회에게, 주님은 종종 뜻하지 않은 방식을 사용해 흩어짐을 주시기도 하는데, 이는 복음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결코 막을 수 없는 성령의 열정과 역동성을 드러낸다. 박해를 통해 흩어진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했다. 이는 단순한 도피 행위가 아니었다. “흩어진 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행 8:4)는 말씀처럼, 자신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치면서도 중단 없이 복음을 전한 것이다. 흩어졌다고 해서 신앙이 식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흩어진 곳’에서 새로운 부흥이 일어났다. 가정집을 예배 장소로 삼는 ‘가정교회’ 형태는 오랜세월을 거치며 지하교회, 혹은 박해 지역에서의 교회 형태로 계승되기도 한다. 교회는 결코 건물에 국한되지 않으며, 건물이 없어도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임을 역사는 증명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초대교회 역사의 본질, 즉 박해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복음전파와 성령 공동체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하며, 이를 현대 교회가 다시금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분열의 교훈 예루살렘과 더불어 구약의 역사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주제는 바로 이스라엘의 분열이다. 다윗 왕국은 12지파가 하나로 뭉쳐 통일왕국의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을 지어 웅장한 하나님의 처소로 삼았다. 그러나 솔로몬말기에 영적 부패와 우상숭배가 깊어져, 결국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갈라지게 된다. 열 지파가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두 지파가남유다를 이었다. 이 ‘분열 왕국’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멀어지면서 모두 결국에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8세기에, 남유다는 주전 6세기에 바벨론에 의해 망했다. 솔로몬이 수많은 첩들을 두면서 이방 우상이 유입된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온백성이 우상숭배에 물들어 버린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우상숭배와 불순종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에게 비참한 결말을 가져왔고, 수많은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끌려갔다. 바벨론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정복 지역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그 민족적, 종교적 결속을 약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그 땅에는 다른 이방 민족들을 이주시켜, 혼합 정책으로 민족의 동일성을 약화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혼혈 민족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이었다. 남유다 백성들은 그들을 ‘순수 혈통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멸시했고, 이로 인해 ‘사마리아와 유대’라는 구분이 나타났다. 예수님 시대에도, 정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하다 여겨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하여 유대에서 갈릴리로 이동할 때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으려 하며 먼 길을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마치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신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말을 걸고 그 영혼을 변화시켰다. 이 대화는 예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혈통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눅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참된 이웃 사랑은 혈통이나 종교적 정체성이 아니라 마음과행함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인이 가장 혐오하는 집단이었는데, 그가 이웃을 돕는 이야기를예수님이 비유로 드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이 어떤 장벽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지명이 순차적으로 언급된다. 이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오래된 갈등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확장은 사마리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시작된 복음이 자연스레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에까지 전파되어야 했으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실제로 사마리아를 향해 쉽게 나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닥친 박해가 촉매제가 되었다.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는 말씀은 ‘역사의 역설’을 보여준다. 편견과 갈등 때문에 쉽게 찾지 못했던 사마리아 지역에, 결국 성도들이 ‘핍박’을 계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빌립 집사의 전도로 인해 수많은 이가 복음을 듣고, 큰 기쁨을 누린다(행 8:8). 장재형 (장다윗)목사는 이 장면이 분열된 민족과 상처를 치유하는 복음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구약에 뿌리 둔 분열과 적대감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초대교회 시절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도 우리 안에는 수많은 편견과분열이 존재한다. 교단 간 분열, 신학적 갈등, 민족적·정치적 대립 등 다양한 형태로 분열이 반복되며, 서로를 정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그 장벽들을 복음으로 무너뜨리신다.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증오와 멸시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앞에서는 부서져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실제 사역 현장에서, 분열된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이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한 화해와사랑임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그 어떤 혼합과 멸시의 역사라도 복음 앞에 무너지고 진정한 연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가 가져온 박해가 사마리아 복음화의 문을 열었듯이, 우리의 아픈 역사도 복음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음을 계속 설파한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저질러 망했지만,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은 끝내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른 뼈 같았던 그들이 에스겔 37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큰 군대로 일어섰고, 분열된 두 막대기가 하나로 합해지는 예언도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영적 교훈이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분열의 아픔과 상처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다시 하나로 뭉쳐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거듭 주장한다. 사마리아와 유대가 화합하고, 나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사마리아를 넘어 복음은 이방 세계로까지 확대된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서 일으킨 대부흥은 신약시대 선교 확장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이후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그 역사를 확인하고,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게 교회가 점점 더 큰 지경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 결정적으로 주역이 되는 인물이 바로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된 ‘바울 사도’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의 대사도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스데반의 순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사울은 그 자리에 있었고,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의 표정을 보며 그 영혼이 흔들렸다고 많은 주석가들이 해석한다. 실제로 사도행전 7~8장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은 사울(바울)의 회심에 큰 영향을 끼쳤고, 결국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전파의 최전선을 담당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분열의 역사와 치유, 그리고 복음 확장’의 주제를 강조하면서, 교회 분열의 아픔이나 나라 간 갈등, 심지어 가정 안에서의 다툼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열의 이면에는 우상숭배나 불순종 같은 영적 요인이 깔려 있음을 지적한다. 겉보기에는 정치나 경제적 문제가 원인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질적인 해결책은 회개와 복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될 때 가능한 연합이 이뤄진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오랜 적대가 결국 복음으로 해결되었듯이, 현대에도 이 동일한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 분열의 벽들을 허무는것을 체험할 수 있다. 3. 현대 교회와 성령의 사명 사도행전 8장은 ‘큰 핍박’이 일어나자 교회가 흩어졌고, 그 흩어진 자리에서 새롭고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는단지 고대 교회의 역사적 사례가 아니라, 현대 교회와 우리 개인 신앙의 길을照明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교회의 존재 목적은 결국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역설한다. 교회가 모이는 것은 중요하고 필수적이지만, ‘나가는것’ 또한 동일하게 중요하다. 모이고 흩어짐이 반복되는 유기적 순환 속에서 복음 전파가 완성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이라’고 하신 것은 성령을 받고 훈련받아 파송되기 위함이었고, 제자들은 결국 예루살렘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지며 복음을 증거했다. 현대 교회도 이 원리를 배워야 한다. 예배당 건물 안에서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 한때의 영적 성장과성령 체험을 ‘보존’하려는 의도만으로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 복음은 교회 안에 갇혀버릴 수 있다. 오히려 박해가 왔을 때 초대교회가 어떻게 흩어졌는지, 또 그 흩어짐이 어떻게 사마리아 전도와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었는지 깊이 묵상할 때, 오늘의 교회가 세상 속으로 파송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는 모이되, 반드시 흩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많은 성도가 한곳에만 모여 안주하는 대신, 직장과 학교, 지역 사회와 해외 선교지로 파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빌립 집사 역시 중요한 본보기다. 빌립은 사도들이 아니었다. 그는 일곱 집사 중 한 명에불과했고, 주로 구제와 봉사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빌립이 바로 사마리아로 내려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큰 부흥을일으켰다. 이는 곧 복음 전파의 주역이 꼭 사도나 전문 선교사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준다. 성령을 받은 모든성도가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표적과 기적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에서의 직분이 무엇이든, 성령으로 충만한 평신도도 강력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 현대 교회는 주일 예배 위주의 행사성, 특정 직분자들만의 사역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스스로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자각하고, 어디로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 장재형 목사 역시 이런 ‘만인제사장’의 개념을 핵심으로 삼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평신도들의 헌신이야말로 교회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임을 자주 강조한다. 또한 8장 후반부에서 빌립은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한다(행 8:26-40). 이 장면은 복음이 이스라엘 지역과 사마리아를 넘어 아프리카로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전 세계로 향해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 사마리아인, 그리고 이방인으로 이어지는 전도의 점진적 확장은 하나님의 마음이 “모든 족속과 열방”을 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은 분명하다.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특정 문화권에서, 혹은 소수민족과 핍박받는 공동체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진정한 ‘안디옥 교회’가 되려면,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의 균형을 잡고, 그 흩어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임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역사를 보면, 서구 교회들도 한때 강력한 성령의 부흥을 경험하고 전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했지만, 어느 순간 내부적으로세속화와 영적 침체가 깊어져 그 불이 꺼지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며 스스로를보호하려는 분위기가 짙어지면, 초대교회처럼 밖으로 나아가려는 열정이 약해지기 쉽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은 ‘핍박’ 앞에서도 도망만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확장하는 기회로 삼아왔다. 역사 속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지하교회 등이 그 예다. 중국, 북한, 중동 등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부흥을 경험하는 사례들은, “교회를 이기는음부의 권세가 없다”(마 16:18)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증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단순히 모이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머지않아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수차례 역설한다. 성령의 권능을 받은 교회는 ‘보냄을 받은 교회(Apostolic Church)’라는 뜻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말 속에는 ‘보냄받은 자’라는 의미가 있으며, 예수님 역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세상에 보내노라”(요 17:18)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교회는 파송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성도들은 각자 부름받은 사명에따라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파송은 결코 목회자나 교단의 ‘명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개개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스스로일어나 복음을 위해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이 때로는 박해나 환란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스데반의 순교가 바울의회심에 영향을 끼치고, 사마리아 전도에 불을 붙인 것처럼 말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큰 슬픔이 ‘사마리아의 큰 기쁨’으로 바뀌는장면(행 8:8)은, 교회사의 흐름이 언제나 우리의 기대나 편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과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성령의 가장 근본적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기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제자들은 도망갔고, 군중은 조롱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이후 성령 강림을 경험한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언했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복음은 계속 확장되어 전 세계 곳곳에 교회를 탄생시켰다. 결국 박해는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기폭제가 되었고,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는 옛 말이 재확인된 것이다. 사도행전 8장 1절부터 8절까지가 보여주는 교훈은, 우리 삶 속의 시련과 아픔조차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발판으로 변할수 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커지는 가운데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머물 때, 하나님은 스데반의 순교 사건과 큰 박해를허용하셨다. 그 결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그 이후 땅 끝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그리고성령의 역사를 깨닫는 것이 바로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메시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그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마음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편견과 적대감에 사로잡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스데반이 보여준 용서와 사랑, 빌립이보여준 적극적인 복음전도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생명력 넘치게 부흥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분열도, 박해도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진전에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성도 개개인이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그 부르심을 따라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가,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듯이, 현대 교회도 작은 순종의 씨앗이 거대한 선교의 열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교회가 프로그램과 건물을 확장하는 것에치중하기보다, 박해받고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서고, 지구촌 곳곳에서 고난받는 성도들과 함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큰 기쁨’이 싹트고, 흩어진 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모인 자들이 다시 흩어지면서, 복음이 계속해서 전진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사도행전적 신앙의 흐름, 곧 ‘흩어짐을 통한 복음화’, ‘분열을 뛰어넘는 연합’,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는 성령 공동체’를 설파하며, “우리는 누구든지 사도로, 선교사로, 복음의 증인으로 파송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예루살렘 교회가 누렸던 뜨거운 부흥과 스데반의 순교가 가져온 흩어짐, 그 흩어짐이 열매 맺은 사마리아의 회복, 그리고 궁극적으로 땅 끝까지 가 닿는 선교의 여정은 장재형 목사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신학이자 비전의 골자다. 현대 교회가 이 역사에서 배운다면, 더 이상 내부적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 끝을 향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결국 사도행전의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매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반복되며, 동시에 끊임없이 확장된다. 스데반은 죽었으나, 스데반을 통해 박해가 시작되었고, 그 박해로 교회는 흩어졌으며, 흩어진 자들이 결국 세계를 복음으로 뒤덮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벽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받게 된 것이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8)라는말씀처럼, 박해와 슬픔이 큰 부흥과 기쁨으로 변화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위대함이며, 어떤 좌절이나 절망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가 주장하는 현대 교회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진정한 부흥은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견뎌내며, 심지어 그 시련을 통해 더 넓은 선교의 지경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교회가 편안하게 머무르고자 할 때,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안일함을 뒤흔드는 상황을 허락하시기도 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흩어져야 할 때가 되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바람이 불 때 민들레 홀씨가 더 멀리 날아가듯이, 교회도 불어오는 역경의 바람이 오히려 복음을 멀리 퍼뜨리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성령은 우리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변화시키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우월감이나 편견, ‘우리는 택함받았으니 저들은버림받았다’ 같은 교만한 태도가 복음 전파를 막는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끝까지 그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랑이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고(행 7:60), 그 사랑과 기도가 사울(바울)의 가슴을 울렸으리라 추정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보여준 전도와 사랑은 박해 속에서 빛나는 ‘하나님 나라의 전형’이었다. 오늘날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다시금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하며,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순교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교회의 사명은 결코 작은 일로 축소될 수 없다. 예루살렘이 가진 역사적·영적 의미를 파악하고, 예수님이 친히 명하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사도행전적 순서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한 개인의 회개와 중생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는 큰 꿈을 가지고 계신다. 다윗의 영광이 드러났던 그 시절이나, 솔로몬의 우상 숭배가극에 달해 나라가 쪼개졌던 시절이나, 결국은 역사가 하나님의 나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셨을 때에도, 하나님 나라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받았음에도 전 세계에 교회를 세웠던것은 그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차례다. 박해나 시련, 분열의 아픔에 멈춰 서기보다, 성령이 지시하시는 길로 흩어지고 파송되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이 원리를 잃어버릴 때 영적으로 정체되고, 때로는 인간적 분쟁에 매몰되기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세계로 흩어졌던 그 거대한 흐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복음의 광대함은, 우리가 그토록 분열되고 갈라진사마리아까지 찾아가며, 나아가 땅 끝으로 달려갈 때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오늘날 교회가 진정한 ‘안디옥 교회’로 일어서려면, 이 복음의 동력과 성령의 바람을 붙들고, 다시 한 번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렇게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교회는 편안함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교회의 본질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박해가 오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성령은 교회를 더 온전한 모습으로 빚어가신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이 편만히 전해지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말씀이 이 땅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그 광경이 ‘현대 교회가 꿈꾸는 비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가정, 직장, 도시, 국가, 나아가 온 열방까지, 복음의 기쁨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때, 교회는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완성한다. 분열과 박해가 우리를 겁주고 낙심시킬 때조차, 우리는 스데반과 빌립, 그리고 바울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를 충실히 지키면서, 성령의 부르심 앞에 순종했다. 스데반은 순교로, 빌립은 사마리아 부흥으로, 바울은 이방 선교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 받았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시대와 장소, 직분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주님의 크고 작은 사역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자들이다. 이렇게 볼 때, 사도행전 8장에 담긴 메시지는 너무나도 풍성하다.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 스데반의 순교와 그로 인한 박해, 성도들의 흩어짐,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큰 슬픔과 큰 기쁨이 교차하며,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의 연약함과 죄를 넘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준다. 특별히 분열된 민족의 상징이던 사마리아가 ‘큰 기쁨의땅’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복음이 가진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장재형 목사는 이 사실을 모든이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며,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다시금 붙드는 날에 이 땅의 수많은 갈등과 상처 역시 치유될 것이라는 소망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장재형 목사가 사도행전 8장을 통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교회가 박해를 받더라도 결국 복음은 더 넓은 지경으로 확장된다. 둘째, 오래된 분열과 상처도 복음 앞에서 치유되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셋째, 성령의 부르심은 특정인에게만 주어지지 않으며, 평신도와 지도자 모두가 복음 전파의 주체로 파송될 수 있다. 넷째,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전해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다. 현대 교회가 이 진리를 붙들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결단할 때, ‘큰 핍박’도 ‘큰 기쁨’으로 바뀌는 역사가 여전히 일어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쫓겨나가정교회로 전환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이, 오히려 세상을 향해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었듯이, 오늘의 교회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령의 역사와, 원수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사도행전적 비전의 핵심이자, 현대 교회가 다시금 붙들어야 할 부름이다. … Read more

Rien que la grâce – Pasteur David Jang

Ⅰ. L’essence de l’Église et la doctrine du salut : la grâce seul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constamment que, lorsqu’on aborde l’essence de l’Église, il faut placer la doctrine du salut au cœur de la réflexion. Selon lui, la raison d’être la plus fondamentale de l’Église est d’annoncer la Bonne Nouvelle du salut par … Read more

仅靠恩典-张大卫牧師

Ⅰ. 教会本质与救恩论:唯独恩典 张大卫牧师在论及教会本质时,一贯强调必须以救恩论为中心。因为教会存在最根本的目的,即是传扬透过耶稣基督而来的救恩之消息,所以教会本质的根基便与“人如何得救”这一问题直接相关。他以《使徒行传》第15章记载的耶路撒冷会议为例,指出早在初代教会时期,就已存在“仅凭信心得救,还是还要加上律法的行为或功劳?”的根本对立。他认为这种冲突在当代教会中也只是换了形式继续重演。 实际上,当使徒保罗和巴拿巴在外邦人中展开事工并宣示“因恩典得救(Sola Gratia)”这一福音核心时,从耶路撒冷下来的法利赛派犹太人却主张“若不行割礼就不能得救”。这等于是要将律法义务或人的功劳纳入救恩的条件之中。张大卫牧师将此称为“功劳信仰”或“人本主义救恩论”。在他看来,所有教义争辩的成败都取决于“是否相信唯有靠主耶稣的恩典得救”,而从这个视角出发,方能看出教会之生命线的要点所在。 与此相关,《加拉太书》中保罗的宣告——不是凭行为,而是借着恩典和信心才能得救——乃是教会必须紧握的最重要信息。保罗那句“你们既靠圣灵入门,如今还要靠肉身成全吗?”同样严正地指出:若人试图以自我义为前提,把行为或礼仪当作必备的得救条件,便陷入严重错误。对此,张大卫牧师进一步强调,救恩论决不意味着废弃律法。律法是神所赐的宝贵话语,是指引圣徒过圣洁生活的路标,但它绝不能被绝对化为得救的充要条件。这与《使徒行传》第15章中彼得所说的“这是我们祖宗和我们都不能负的轭”如出一辙。 在他看来,这个问题在现代教会依旧不断重现。无论是教派与总会召开会议,还是在宣教地区创立新教会时,都必须检视“宗教改革所传承的唯独因信称义原则是否被完全遵守”。有时因教会运营和扩张、教势或财务等因素优先时,核心救恩论便会被稀释。张大卫牧师对此提出警告,并将之比喻为“在葡萄酒里掺水,使其变得寡淡”。他认为,只要教会存在,这就是永远要反复铭记的关键教义。 他指出,若救恩论发生动摇,教会就很可能蜕变为以人为本的宗教,从而失去爱和能力。因为一旦陷入律法主义或形式主义,信徒便会丧失救恩确据,被各类制度和礼仪所束缚,而无法享受真正的自由。也正因如此,张大卫牧师反复强调《罗马书》1章17节“义人必因信得生”。从初代教会的争论到中世纪天主教的赎罪券问题,乃至当代教会的制度性失误或冲突,其实本质都归结为同一个问题:即“耶稣基督的恩典是否是唯一得救的途径”。他指出,每当人想要往里面添加人的功劳或律法行为时,教会就会迷失方向。 因此,张大卫牧师极力主张,在教会的全面事工中都必须不断检视救恩论。从崇拜和讲道、牧者培训和神学院课程设置、到教派总会确立信仰告白和宪章,以及在宣教工场上创立教会或培训信徒等各个环节,都不可动摇“以恩典为中心的信仰”。他之所以认为《使徒行传》第15章耶路撒冷会议对于初代教会起了教义与属灵层面的深远影响,并且如今的教会仍应承继,正是基于这一点。保罗和巴拿巴在扩展外邦人宣教时遇到的冲突,实则在今日世界各地的宣教现场和教会制度中不断重演。他结论道:这种“循环”最终取决于教会对“唯独恩典、唯独信心”福音核心的坚守与否,因为没有任何其它要素可以替代这一核心。他多次强调这一点。 Ⅱ. 以恩典为中心的宣教与普世教会的扩展 张大卫牧师一贯强调,教会存在乃是为了普世宣教。他将《使徒行传》第15章的耶路撒冷会议视为“历史上第一次教派总会”,关注初代教会为拓展外邦宣教而遭遇的挑战,并指出今日的宣教现场亦存在相同的议题。教会若能守住“唯独恩典得救”的本质,则福音的能力就能跨越文化和种族的藩篱,得以有效传播。这正是他论证的核心。 他以欧洲教会的宣教史为例,指出一方面曾以文化优越感打压当地传统,另一方面又过度妥协以致基督教身份被冲淡,这两种情况都曾引发问题。而此正呼应了《使徒行传》第15章中“外邦人教会必须遵守包括割礼在内的犹太文化与律法,是否为得救条件”的质问。当时耶路撒冷会议上彼得宣告:“我们相信他们也和我们一样,因主耶稣的恩典得救”,这意味着放下长久以来的选民意识和律法式救恩观,并正式承认外邦人也同享那相同的恩典。 张大卫牧师认为,这一幕理应延伸为当今所有宣教的根本原则。教会既不可不加批判地全盘接纳某些文化,也不可走极端地完全排斥;无论如何,福音的本质都决不能被损害。最终的问题在于,“耶稣基督的十字架与复活”这福音的核心,是被淡化还是被保持原貌。他举日本宣教及其他海外宣教事例说明:尊重当地文化、同时坚守救恩论的本质,才是福音能够长期深植当地的真正途径。 在教会决定宣教方向、以及在教派层面制定国际合作策略时,这种神学身份和救恩论根基都不可被动摇,乃是张大卫牧师坚定的看法。他提醒,要警惕过度同化主义,也要警惕只强调规则的高度一元化做法,其原因在于这两极都可能引发文化冲突,或使福音本身被异化。对他而言,《使徒行传》第15章展现的是离心力和向心力的平衡:一方面是福音广传的宣教离心力,另一方面是“唯独恩典”这一向心力,两者须取得协调,教会才不会分裂,并且能守住本质。 他还特别提到,要严加防备渗透于宣教工场中的异端教导。历史上,赎罪券、朝圣之旅、以特定规则为得救条件等,都属于模糊“唯独耶稣基督恩典”这一福音核心的典型案例。正如保罗在《加拉太书》中警告“并没有别的福音”一样,若不明确究竟何为唯一的得救之路,教会终将陷入冲突和混乱。因此,张大卫牧师提出,在追求宣教拓展的同时,必须时刻检视教会自身的制度、职分以及信仰告白,确保其中心轴是“以恩典为重心的救恩论”。当救恩论的平衡被打破时,无论教会的人数或外在规模多么增长,都终将失去本质并陷入纷争。 他据此主张,评估宣教是否成功,不能仅看教势的扩张或财力的增加,而要以“福音真理被清晰宣讲并付诸实践”的程度为标准。他相信,正如《使徒行传》第15章中“唯独恩典得救”的宣言奠定了外邦教会的生存基础一样,惟有当今教会也坚持此确信,才有可能进行真正的普世宣教。如果再加上教会坚固的神学认同与合理的文化弹性,如同保罗与巴拿巴在安提阿为基地扩展福音时那般的动力,今天依旧可以被重新激发。 Ⅲ. 关于神学冲突与教会秩序的建议 张大卫牧师在研究教会史、投身实际牧会的过程中,一直在思考教会内外发生的神学冲突应如何化解。他注意到,在《使徒行传》第15章的耶路撒冷会议中,“历史上第一次教派总会”已树立了某种典范。初代教会的领袖们并非只通过多数表决来做结论,而是回顾了旧约经文等神在历史中的带领,并考察了圣灵真实的工作,然后才达成共识。彼得的见证、巴拿巴和保罗关于外邦人事工的报告,以及雅各对旧约的引用,都交织在一起,最终宣告“神也赐给外邦人同样的恩典”,并得出了“我们与他们并无差别”的明确结论。 他将这一过程称为教会的“合议式决断”,同时主张在每次教派总会召开之际,首先要分辨的是:“此次议题是与福音与救恩相关的核心问题,还是仅仅属于教会运营层面的行政或政治冲突?”如果是行政问题,可以通过充分对话和改进程序来解决;但如果与救恩论息息相关的核心议题被摆到桌面,就不能采取中立折中或搀和各派观点来勉强合意。因为“福音本质”绝不可被模糊或妥协,而对此最终必须在“唯独圣经(Sola Scriptura)”和“圣灵的带领”之下做出明确了断。 他认为,教会中反复出现的幻影说、诺斯替主义以及自由派神学等,都是企图以人的理性、经验或知识,对福音的绝对本质重新加以诠释的尝试。但这种尝试往往损害“唯独恩典”的原则,最终会将教会引向律法主义或功劳主义,乃至人本主义。无论是初代教会或宗教改革时代,此类谬误从未停止,至今只是换了形态继续出现。 因此,若要在教会中健康地化解神学冲突,就必须回到以下几点:“回归圣经的原则”、“尊重圣灵的见证”,以及“在共同体内开放倾听各方意见的合议过程”。在《使徒行传》第15章中,并非由彼得或保罗某位著名使徒专断决策,而是初代教会众领袖同在一处,分享各自的见证,并共同探讨旧约经文,才最终达成共识。只有在这样“合议式决断”下,教会才能不偏离救恩的核心,化解纷争,并继续持守福音的自由和恩典。 他对于现代教会分裂或异端问题也得出同样的结论:每当“唯有通过主耶稣基督的十字架才能赦罪,且唯有相信祂的恩典才能得救”这一真理被淡忘时,问题就会出现。教会的职分、礼仪、奉献制度、洗礼方式、圣餐仪式等当然都十分重要,可一旦将它们提升为得救的前提条件,就会丧失初代教会所拥有的福音自由与大能。教会的各样制度或传统,只应是为了更丰富地享受和分享恩典的管道,绝不能被当作救恩的前提。对此,他不时提醒众人这一关键点。 基于此,张大卫牧师强调,应将教派总会视为“重新确认恩典福音的敬拜与献身之场”。他指出,当总会退化为教权争夺或政治角力的场所时,教会就会陷入停滞,并指出真正的大公精神(Ecumenical)应当来自众人在神的话语与圣灵带领面前的谦卑倾听。唯有这样,才可能重现初代教会那种生机勃勃的决断力,并使爱与服事在教会内复兴。 在他所带领的牧会和教派领导工作中,也不断强调的是“服事式的领导力”。耶稣亲口说“不是要受人的服事,乃是要服事人”,故而教会的职分者需以扶持和帮助他人为优先,努力让更多灵魂听见福音、享受恩典,而不是炫耀权威。若教会向霸权主义或等级主义倾斜,就会高举人的制度与功劳,而把福音恩典冷落一旁。因而在总会或教派层面进行决策时,首要的问题不是“谁更高位”,而是“怎样能让更多人进入耶稣基督的恩典之内”。 综上,张大卫牧师认为,初代教会和现代教会的冲突模式本质上并无差异。《使徒行传》第15章中外邦教会与犹太教会的冲突,如今也以类似形式再度出现,而保罗、彼得、雅各等人所示范的那种以“唯独恩典、唯独信心”为标准的处理方式,正是当今解决冲突的关键。耶路撒冷会议之所以一直被各教会、各教派,以及各宣教工场视为不断回顾的原型(archetype),原因就在于此。此外,它与宗教改革传统所高举的“唯独圣经、唯独恩典、唯独信心”也严密契合。 最后,他强调,教义或救恩论绝不能只停留在智识理解层面,而要在现实生活中以爱和服事为体现。由于“恩典”并非抽象概念或纯粹神学宣称,而是罪人藉着耶稣基督得赦免并获得新生命的确据,所以真心领悟此恩典的人,自然而然会产生服事他人、建立他人的动机。如果缺乏这点,正如保罗在《哥林多前书》第13章所言,“纵然有再多知识,却没有爱,也毫无益处”。 由此可见,张大卫牧师将“对教会本质与救恩论的理解”、“以恩典为中心的宣教与普世教会扩展”、“神学冲突与教会秩序问题”这三方面环环相扣地加以阐释。他相信,唯有将“教会为何存在、福音为何物、如何拓展与坚守”这三者放在一起思考,才能重现初代教会那种生机勃勃的景象。而《使徒行传》第15章的耶路撒冷会议,时至今日仍是可资借鉴的最具体现实的指引。正因为在不同历史时期所面对的冲突与挑战在本质上相当一致,而“唯独恩典、唯独信心”这一福音核心才是教会向世界继续前行的中心支柱。他主张,为此教会无论在教派总会还是宣教工场,都要不断重申救恩论、依靠圣经话语与圣灵带领,并努力塑造“爱与服事”的共同体。唯有如此,今天的教会才能体验到与初代教会同样的热情与能力。

恵みのみ – 張ダビデ牧師

Ⅰ. 教会の本質と救済論:ただ恵みによって張ダビデ牧師は、教会の本質を論じる際、救済論を中心に据えるべきだという主張を一貫して強調している。教会が存在する最も根本的な目的はイエス・キリストによる救いの知らせを伝えることにあるので、教会本質の根が「いかにして救いに至るのか」という問題と直結しているというのである。彼は使徒言行録15章に記録されたエルサレム会議の事例を引き合いに出し、初代教会の時代からすでに「信仰のみで救いを得るのか、それとも律法的行いや功績が加え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いう本質的な対立があったと指摘する。そしてこの葛藤は、現代の教会においても形を変えて繰り返されていると分析する。 実際、パウロとバルナバが異邦人への宣教を行い、福音の核心を「恵みによる救い(ソラ・グラティア)」だと明言したとき、エルサレムから下ってきたパリサイ派出身のユダヤ人たちは「割礼を受けなければ救われない」と主張した。これは結局、律法的義務や人間の功績が救いの条件に含まれるべきだという意味であり、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功績信仰」あるいは「人本主義的救済論」と呼ぶ。彼が見るところ、あらゆる教理論争の成敗は「主イエスの恵みによって救われると信じるか、そうでないか」にかかっており、この視点こそ教会の生命線を成す核心だと考えている。 これに関連して、ガラテヤ書でパウロが力強く宣明した「行いではなく、恵みと信仰によってのみ救われる」という真理は、教会がしっかりつかむべき最も重要なメッセージだという。パウロの「御霊によって始まったのに肉によって仕上げるのか?」という問いかけもまた、人間が自分の義を掲げて行いや儀式を救いの前提条件にしようとする際に生じる誤りを、断固として指摘するものである。張ダビデ牧師は、ここで言う救済論が決して律法の廃止を意味しないことをあらためて強調する。律法は神が与えた尊い御言葉であり、聖徒が聖なる生活を歩む道を指し示す標識ではあるが、救いの必要十分条件として絶対視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だ。それは使徒言行録15章でペトロが「私たちの先祖たちも、私たち自身も負うことのできなかったくびき」と呼んだ律法主義的要求と軌を一にしている。 この問題は現代の教会でも繰り返し現れる、と彼は見ている。教団や総会が開かれるたび、あるいは宣教地で新しい教会を開拓するときなど、「信仰によってのみ義とされる」という宗教改革以来の原理が果たして十分に守られているのかを点検すべきだというのである。ときには教会の運営や拡張、教勢や財政的理由が優先されるあまり、本質的な救済論が希釈される事例が生まれることがあると、張ダビデ牧師は警告する。彼はこれを「ぶどう酒に水を混ぜて味を薄めてしまうこと」だと比喩し、教会が存在する限り、この問題は絶えず思い起こすべき核心教理だと主張する。 もし救済論が乱れると、教会は人本主義的な宗教へと変質する危険が高く、最終的には愛と力を失ってしまうと彼は指摘する。律法主義や形式主義に陥ると、聖徒たちは救いの確信を失い、さまざまな制度や儀式に縛られて自由を享受できなくなるからだ。張ダビデ牧師がローマ書1章17節の「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いう御言葉を繰り返し強調するのも、同じ文脈からである。初代教会の論争や中世カトリック教会の免罪符問題、現代教会の制度的誤謬や葛藤も、結局その本質は一つに帰結する。つまり「ただ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が救いへの唯一の通路なのかどうか」であり、そこに人間の功績や律法的行いを付け加えようとするたびに、教会は方向を見失ってきたのだと彼は語る。 このため、張ダビデ牧師は教会のあらゆる働きの中で、絶えず救済論を点検すべきだと力説する。礼拝と説教、牧会者の育成や神学校のカリキュラム、教団総会での信仰告白書や憲法を確定する作業、宣教地の教会開拓や信徒教育に至るまで、すべての領域において「恵み中心の信仰」が揺らいではならないというのである。使徒言行録15章のエルサレム会議が初代教会全体に与えた教理的・霊的影響力を、現代の教会が引き継ぐべきだと見るのもこの理由による。パウロとバルナバが異邦人宣教を拡張する中で経験した葛藤は、実は今日の世界各地の宣教現場や教会制度の中でも繰り返されており、その繰り返しの是非は結局、「ただ恵み、ただ信仰」という福音の核心がどれだけ強調され、守られているかにかかっているというのである。彼は、これが決してほかの要素で代替されることのない絶対的なものだと何度も言及し、結論づけている。 Ⅱ. 恵み中心の宣教と世界教会の拡張張ダビデ牧師は、教会が世界宣教のために存在するという点をいつも強調している。使徒言行録15章のエルサレム会議を「歴史上初の教団総会」と捉え、初代教会が異邦人への宣教拡張を巡って直面した問題が、現代の宣教現場にもそのまま適用されるという事実に注目する。教会が「ただ恵みによって救われる」という本質を守るとき、その福音の力が文化や人種の壁を乗り越えて効果的に伝わる、というのが彼の核心的論理である。 彼はヨーロッパ教会の宣教史を例に挙げながら、一方では文化的優越感によって現地の伝統を抑圧し、また一方では過度に妥協してキリスト教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希釈してしまった事例が、いずれも問題を引き起こしたと指摘する。これは使徒言行録15章において「割礼をはじめとしたユダヤ文化や律法が異邦人教会の救いの条件になるべきか」という問いと直結する。あのときエルサレム会議でペトロが「わたしたちは彼らも同様に主イエスの恵みによって救われると信じている」と公言したことは、長年の選民意識や律法的救いを手放し、異邦人も同じ恵みのうちにあることを公認した意味を持つ。 張ダビデ牧師は、この場面が現代におけるあらゆる宣教の根本原理として拡張されるべきだという。教会が特定の文化圏を無批判に受け入れたり、逆に極端に排斥したりしてはならず、いかなる場合も福音の本質が損なわれてはならない。最終的に問題となるのは、「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と復活」という福音の核心が希釈されるか、きちんと維持されるかにかかっている。彼は日本宣教やさまざまな海外宣教の事例を挙げつつ、現地文化を尊重しながらも救済論の本質を守ることこそ、長期的に福音が確実に根付く道であると説明する。 教会が宣教の方向性を定め、教団レベルで国際協力の戦略を立てるときにも、こうした神学的アイデンティティと救済論的な根が揺らいではならないというのが、張ダビデ牧師の確固たる見解である。過度な同化主義や規範だけを押しつける画一主義をともに警戒する必要があり、そうでないと文化的衝突を招いたり、福音そのものが変質してしまいやすいからだ。彼にとって使徒言行録15章は、遠心力と求心力の調和を示している場面である。福音が広く伝わる宣教的な遠心力と、「ただ恵み」という求心力がバランスを保つとき、教会は分裂せずに本質を守れるというのである。 さらに彼は、宣教現場に入り込む異端的な教えを徹底的に警戒すべきだと強調する。歴史的に見ても、免罪符や聖地巡礼、特定の規則履行による救いの条件付与などは、「ただ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という福音の核心を曇らせる代表的な事例だ。ガラテヤ書でパウロが「ほかの福音はない」と警告したように、何が救いへの唯一の道であるかを明確にしなければ、教会は結局、葛藤と混乱に陥る。したがって張ダビデ牧師は、宣教的な拡張を図る過程においても、教会自らの制度や職制、信仰告白を常に点検し、その中心軸に「恵み中心の救済論」が据えられているかを確認する必要があると言う。救済論のバランスが崩れると、教会は数字や外形的な成長にかかわらず、本質を見失い分裂を経験するからだ。 そうした意味で、宣教の成功を単に教勢拡大や財政増加で判断することはできず、福音の真理がどれだけ明確に宣べ伝えられ、実践されるかが基準になると主張する。使徒言行録15章で決定された「ただ恵みによって救われる」という宣言が、異邦人教会の存立基盤となったように、現代の教会が同じ確信を堅持する時にこそ、真の世界宣教が可能になると彼は信じている。そこに教会の神学的アイデンティティと文化的柔軟性が適切に調和するとき、パウロとバルナバがアンティオキアを拠点にして福音を広げていったようなダイナミズムが、今も再現され得るというのである。 Ⅲ. 神学的葛藤と教会秩序への提言張ダビデ牧師は、教会史を研究し現場を経験する中で、教会内外で発生する神学的葛藤がどのように解決されるべきかを深く考えてきた。彼は使徒言行録15章のエルサレム会議を通して、「歴史上初の教団総会」が既にどんな模範を示したかに注目する。初代教会の指導者たちは、単なる多数決によって結論を下したのではなく、旧約聖書をはじめとした神の歴史的摂理を振り返りつつ、聖霊の実際的な働きを共に確認した上で結論に到達した。ペトロの告白や、バルナバ・パウロの異邦人宣教報告、ヤコブによる旧約引用が結び合わされ、「神が異邦人たちにも同じ恵みを与えられた」という事実を宣言し、「わたしたちにも彼らにも差別はない」という確固たる結論に達したのである。 彼はこの過程を教会の「合意的決断」と呼び、教団総会が開かれるたびにまず見極めるべきは「その争点が福音と救いにかかわる本質的な問題なのか、あるいは教会運営上の行政的・政治的葛藤なのか」という点だと述べる。行政的問題であれば充分な対話や手続きの改善によって解決できるが、救済論と直結する核心的争点であれば、中立的に妥協したり、適当に折衷案を取って合意を図るような扱いではいけないというのが彼の立場である。「福音の本質」はいかなる形でも曖昧になったり妥協されたりしてはならず、この問題に関しては結局、「ただ聖書(Sola Scriptura)」と「聖霊の導き」のもとで確実に結び目を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する。 彼は、教会内で繰り返し登場する仮現説やグノーシス主義、リベラル神学などは、人間の理性や経験、知識を通じて福音の絶対的本質を再解釈しようとする試みに起因すると診断する。しかし、こうした試みは「ただ恵み」という原則を損ないやすく、最終的に教会を律法主義や功績主義、さらには人本主義へと導いてしまう。かつての初代教会や宗教改革時代にも、こうした誤りが絶えず現れ、現代にも形を変えて繰り返されているという。 結局、教会が神学的葛藤を健全に解決するには、「聖書へ立ち返る原則」と「聖霊の証しを尊重する態度」、そして「共同体内の一人ひとりの意見を開かれた形で傾聴する合意のプロセス」が不可欠だと彼は説く。使徒言行録15章においても、ペトロやパウロのような著名な使徒一人の独断的決定ではなく、初代教会の指導者たちが一堂に会し、各々の証言を共有しながら旧約聖書の解釈を共に分かち合った末に結論に至った事例であることが重要だ。こうした合意的決断がなされたとき、教会は救いの本質を損なうことなく葛藤を解決し、福音の自由と恵みを守り続けられるという。 彼が現代教会の分裂や異端問題を見て下す結論も同様である。「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によってのみ罪の赦しを得て、その恵み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のみ救われる」という事実が曖昧になるたび、問題が生じてきたというのだ。職分や儀式、献金制度、洗礼のやり方、聖餐式などは教会生活の中で非常に重要ではあるが、それらを救いの条件として格上げした瞬間、初代教会が享受していた福音の自由と力は失われてしまう。教会の多様な制度や伝統は、恵みをより豊かに享受し分かち合うための通路であって、救いの前提条件であっ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常に喚起する。 張ダビデ牧師は、このような文脈から教団総会を「恵みの福音を再確認する礼拝と献身の場」として活用すべきだと力説する。彼は総会が教権争いの場や政治的な舞台へと転落してしまうとき、教会は停滞を招いてきた歴史を指摘し、真のエキュメニカル精神は神の御言葉と聖霊の導きの前で互いに謙虚に耳を傾け合う態度から生まれると語る。そうしてこそ、初代教会が持っていた生命力ある決断が再現され、愛と仕え合いの精神が教会に息づくようになるという。 彼が現場の牧会と教団のリーダーシップを通して強調するのも、結局「仕えるリーダーシップ」である。イエス自ら「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仕えるために来た」と仰ったように、教会の職分者は権威を誇示するのではなく、他者を立て助け、多くの魂が福音を聞き恵みにあずかれるように献身すべきだというのだ。もし教会が覇権主義や階級主義へと傾けば、人間の制度や功績が際立ちはじめ、福音の恵みは後ろへ追いやられてしまう。総会や教団レベルのあらゆる決定で優先されるべき問いは「誰がより偉いのか?」ではなく、「どうすればより多くの魂を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のうちに招くことができるのか?」であるべきだという。 結局、張ダビデ牧師は、初代教会と現代教会の葛藤の様相は本質的には変わらないと診断する。使徒言行録15章に表れた異邦人教会とユダヤ人教会の衝突は、現在でも似たような葛藤として繰り返されており、その解決策もまたパウロやペトロ、ヤコブらが示したように「ただ恵み、ただ信仰」を基準にするとき、はっきりしてくるというのである。エルサレム会議がすべての教会と教団、さらに宣教地で絶えず参照されるべき原型(アルケタイプ)として残っているのはそのためだ。さらに宗教改革の伝統である「ただ聖書、ただ恵み、ただ信仰」というスローガンとも精巧にかみ合っている点を強調する。 最後に彼は、教理や救済論が単に知的理解にとどまらず、実際の生活の中で愛と仕え合いとして現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説く。「恵み」という概念は抽象的な教理や神学的宣言ではなく、罪人だった人間が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罪の赦しを得て新しい命を得たという確信であるがゆえに、この恵みを真に悟れば、他者に仕え、共に立て上げようとする動機が自然に生まれるからだ。もしそれがないなら、パウロが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一13章で指摘したように、「どれだけ多くの知識があっても、愛がなければ何の役にも立たない」という結論に至らざるを得ないと彼は主張する。 かくして張ダビデ牧師は、教会の本質と救済論に対する理解、恵み中心の宣教と世界教会の拡張、そして神学的葛藤と教会秩序の問題を有機的に結びつけて論じる。教会がなぜ存在し、福音とは何であり、どのように拡張され守られるべきかを総合的に考えるときにこそ、初代教会が示したダイナミズムが再現され得ると見るのである。そして使徒言行録15章のエルサレム会議は、この旅路において現代でも最も具体的かつ実際的な指針として機能すると言う。張ダビデ牧師は、各時代において形こそ変われど本質的には同じ葛藤と挑戦に直面してきた教会が、結局「ただ恵み、ただ信仰」という福音の中心軸を握りつつ世界へと前進し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結論づける。そしてそのために教会が教団総会でも宣教現場でも、常に救済論を再確認し、聖書の御言葉と聖霊の導きに依拠し、愛と仕え合いの共同体を目指すべきだと重ねて強調する。それこそが初代教会が持っていた熱情と力を、今日同じように経験する道だと彼は確信しているのである。

Only grace – Pastor David Jang

I. The Essence of the Church and Soteriology: By Grace AlonePastor David Jang consistently emphasizes that when discussing the essence of the church, one must place soteriology at the very center. Because the church’s most fundamental purpose is to proclaim salvation through Jesus Christ, the question of “how we are saved” is directly connected to … Read more

오직 은혜 – 장재형목사

Ⅰ. 교회 본질과 구원론: 오직 은혜 장재형목사는 교회의 본질을 논할 때, 구원론을 중심에 두어야 함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에 있으므로, 교회 본질의 뿌리가 곧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회의 사례를 예로 들며, 초대교회 시절부터 이미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가, 아니면 율법적 행위나 공로가 더해져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대립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 Read more

La Chute et le Salut – Pasteur David Jang

Voici un compte-rendu de l’enseignement prêché par le pasteur David Jang au sujet de la « chute de l’homme, de l’identité de Satan et de la façon dont le croyant doit y faire face », en s’appuyant principalement sur Genèse 3 et 4. L’exposé englobe également les textes de la Création (Genèse 1 et 2), … Read more

堕落与救赎——张大卫牧师

以下内容整理自张大卫牧师围绕《创世记》第3章和第4章所做的主题讲道,着重探讨“人类的堕落、撒但的真面目,以及信徒当如何应对”的信息。此信息还结合了《创世记》1、2章有关“创造”的经文,并延伸至《以赛亚书》14章、《以西结书》28章、《启示录》12章等相关段落,最终与主祷文中“不要使我们遇见试探”这句祈求相衔接,深入阐释了张大卫牧师所传达的宝贵教训。内容主要讲到:上帝所造的受造物当中,为何会出现撒但?撒但又是如何诱惑人类?信徒应以何种态度应对魔鬼的诡计?等等。 1. 人类的堕落与撒但的战略 张大卫牧师之所以强调要集中研读《创世记》第3章和第4章,正是因为这两章清晰展现了人类堕落的过程以及其根源所在。《创世记》1、2章记载了上帝创造宇宙万有的过程:祂在黑暗中造光,将天与地分开,又造海洋、陆地以及各种生物。最终,在这一切创造的巅峰之处,上帝按自己的形象造了人,创造了男人和女人。张大卫牧师指出,《创世记》1、2章是理解之后人类堕落(3章)与后裔该隐问题(4章)的前提;因为只有先知晓“起初的世界是良善与完美的,没有罪和死亡”,才能观察到其中究竟发生了怎样的“变质”。 然而,到了《创世记》第3章,意想不到的一个存在出现了——“耶和华上帝所造的、比一切田野的活物更狡猾的蛇”。这条蛇接近亚当和夏娃,抛出一个质疑上帝话语的问句:“上帝岂是真说不许你们吃园中一切树上的果子吗?”张大卫牧师指出,这个问题正是人类与撒但接触的最核心关口——要么顺从“上帝所说的话”,要么人类自立标准而违背上帝,走上不归之路。 蛇对夏娃说:“你们不一定死”,这是明显的谎言,却同时极具诱惑力。上帝曾警告:“分别善恶树上的果子,你不可吃;你吃的日子必定死。”照理,凡相信并遵行上帝话语者自会怀着敬畏和警惕;但蛇又加一句“你们不只不会死,而且还会像上帝一样聪明”,煽动起人内心深处的骄傲与私欲。张大卫牧师在这里阐明撒但行事的特点:它会彻底曲解上帝的话,并以看似合理、却暗藏杀机的逻辑或牵强解释,使信徒从“以上帝为中心”一步步滑向“以自我为中心”。 牧师特别注意到夏娃的反应:“那女人见那棵树的果子好作食物,也悦人眼目,且是可喜爱的,能使人有智慧。”这里包含了从“视觉上看见”(看上去可口诱人)→“亲手触碰”(实际接近)→“口中吃下”(付诸行动)的一连串犯罪机制。罪往往从小小的好奇开始,却最终玷污整个人的心思意念,直至带来死亡。 张大卫牧师将这处经文与主祷文“不要使我们遇见试探”紧密相连,指出人所能遭遇的最大试探之一便是“想要取代上帝的位置”,也就是骄傲。人原本是上帝所造、当顺服祂才能得福,却往往想要自掌善恶,成为自己的标准。蛇正是利用了这一点,引诱人自作主张。张大卫牧师认为,这正是整段堕落叙事的核心。 接着,在《创世记》第3章中,亚当和夏娃终于吃了禁果。其首要后果就是二人彼此感觉羞耻,“看见自己赤身露体,就拿无花果树的叶子为自己编做裙子”。同时,当上帝在园中行走时,他们竟害怕而躲藏起来。这些细节充分象征了罪带来的结局:在上帝面前产生羞耻(灵里的羞愧),人开始为自己寻求防御措施(无花果叶子做的裙子),最终远离上帝的同在(躲藏)。 《创世记》第3章的末了,上帝宣告了更彻底的审判:“你本是尘土,仍要归于尘土”,“那人已经与我们相似,能知道善恶,现在恐怕他伸手又摘生命树的果子吃,就永远活着”,于是上帝阻止了人得着永生的通路。撒但最初的谎言是“你们不一定死”,结果却是“人必定要死”。张大卫牧师提醒大家,人类的堕落并非只停留在夏娃吃果子的那一刻,而是成为全人类的原罪——至今,我们都生在这罪性影响之下。 而翻到《创世记》第4章,亚当的后代该隐之事进一步说明了这种罪性如何加速蔓延。该隐因忌妒弟弟亚伯,最终竟把亚伯杀死,可见“以自我为中心的欲望”会何等迅速地发芽结果。张大卫牧师将此视为“撒但所挑起的堕落在另一个层面的扩张”,从个人到家庭,甚至到社会,罪不断扩散。自从罪进入人心,“蛇的谎言”便更容易左右人,使人滑向手足相残的极端罪恶。 细读《创世记》第4章,可见该隐多么自我中心。圣经载明:“耶和华不看中该隐和他的供物。”为什么上帝不悦纳该隐的祭物?对此众说纷纭,但张大卫牧师强调要聚焦于祭物所折射出的“内心动机”。或许该隐心里并非真正把最好的、最尊崇的献给上帝,而是基于自己的方式和想法去“敬拜上帝”,或者只是勉强履行义务罢了。这样一来,上帝自然不会悦纳。后来引发的嫉恨和怒气,更促使他走向杀害弟弟的歧途。 《创世记》3、4章给当代信徒的警示颇为清晰:罪的起点往往是一点疑惑或不信,但若听凭其在心中滋长,就会发展出骄傲、曲解上帝话语、自我中心等态度,最终带来属灵的死亡、人际冲突,甚至杀戮。张大卫牧师强烈呼吁每个基督徒都要回顾这“原初的堕落模式”,从而更深体会为何新约里耶稣基督要来解决这问题。因为若不明了罪性的根基,人就难以真正感受到主耶稣所成就的赎罪与十字架恩典何等伟大。 他继续强调:正是上帝的儿子道成肉身,来恢复上帝原本为人所设计的完美计划。所谓“堕落的开端是‘像上帝一样’的妄想”,而耶稣却以《腓立比书》第2章记载的方式“虚己、取了奴仆的形象”,完全顺服,以此彻底击溃撒但唆使的骄傲。耶稣本是上帝,却甘愿卑微至死,而这正是胜过罪与撒但的方式。故此,真正的救恩之路也是“舍弃骄傲,走谦卑顺服的道路”。张大卫牧师称,借着对《创世记》3、4章的正确认识,我们更能体会:若人不认清罪的根源,就无法真正珍惜耶稣代赎的大爱。而上帝差派爱子,正是要恢复那原本失落的恩典。 由此,他提出,“学习《创世记》3、4章的目的之一,是让我们看清撒但的战略及人性弱点,并在主面前谦卑悔改,不再陷于蛇的诱惑”。要做到这一点,需要我们天天默想上帝的话语,并在教会群体的真理光照下谨慎自省,免得落入自我中心、曲解真理的陷阱。我们应当常常追问:“这真是上帝要我们做的吗?”并且祈求主:“不要使我们遇见试探,救我们脱离凶恶。”保持谦卑警醒,不给撒但留地步,这就是张大卫牧师不断传讲的要义。 2. 撒但的真面目与堕落的天使 张大卫牧师指出,圣经在《启示录》第12章里揭示了那蛇的真实身份,就是“撒但、魔鬼、大龙”。《创世记》第3章出现的蛇,不只是单纯的动物,而是背后代表了“背叛上帝的堕落天使长”或“天使势力之首”。若只把蛇看成一条一般的野兽,就会忽略整本圣经所传达的救赎历史脉络。撒但、路西弗(Lucifer)、魔鬼、大龙、那迷惑普天下的,都指向同一个根源——它本是上帝所造的天使之一,却因心中骄傲,想要与至高者同等,最终堕落成堕天使群的首领。 张大卫牧师引用《以赛亚书》第14章与《以西结书》第28章的“巴比伦王”“推罗王”比喻,说明那些经文的背后暗指撒但。尤其在《以赛亚书》第14章,“明亮之星,清晨之子啊,你何竟从天坠落?你这攻败列国的,何竟被砍倒在地上?”可见“明亮之星”(在拉丁文圣经里作Lucifer)原本在上帝身旁发光,却心生叛逆。“我要升到高云之上,我要与至上者同等”,这是撒但最本质的罪,也是它被摔到深渊的主因。 同理,在《以西结书》第28章,“推罗王”的比喻中提到原先受膏遮掩约柜的基路伯曾在伊甸园,但因罪而被废黜,象征初始的堕落早在人类之先就发生于天使界。张大卫牧师说:“透过这些经文,我们明白不仅人类会犯罪,还有一个主动引诱、攻击、倾覆人类的灵界势力存在。这正是教会必须进行属灵争战的重要原因。” 《启示录》第12章中描绘大龙被摔下,“那古蛇名叫魔鬼,又名撒但,是迷惑普天下的”,带着天上三分之一的星辰一同坠落。这表明堕落的天使数量极其庞大,它们一起背叛了上帝,现今占据空中权势,不断诱惑、迷惑世人,甚至操纵世上的执政掌权者做恶。保罗在《以弗所书》第6章说:“我们并不是与属血气的争战,而是与那些执政的、掌权的、管辖这幽暗世界的、以及天空属灵气的恶魔争战。”正是说明此理。 张大卫牧师提醒,若不明白这灵界战争的实情,我们就容易把许多问题只看成人与人之间的冲突、或制度方面的缺失,却忽略背后的恶势力。事实上,撒但常常透过强权、君王、政权以及各样欲望来实施它的计划。埃及法老用酷刑对付以色列人,或巴比伦王、亚述王暴虐征服四方,这其中都潜藏着撒但“骄傲与暴力”的属性。撒但最渴望的是颠覆上帝的荣耀,让人们去拜偶像,把原本该归于上帝的敬拜转移给它自己。 在旧约时代,各类偶像层出不穷,背后正是撒但要夺取敬拜的图谋:巴力崇拜让人陷入淫乱;摩洛崇拜竟要求用活人献祭;金牛犊崇拜象征对财富和物欲的敬畏。张大卫牧师认为,这一切偶像崇拜背后都有撒但“骄傲与强力支配”的影子,它诱导人离开真神,使人沉迷于淫乱、暴力和自我满足。 这种诱惑并非只存在于旧约时代,新约时代乃至今天仍然如此。耶稣在旷野禁食40天时,撒但曾亲自试探祂三件事:“你若是上帝的儿子,就叫这些石头变成食物吧”“你可以从圣殿顶上跳下去,天使会保护你不受伤害”“你若拜我,我就把万国的荣华都给你”。张大卫牧师指出,这正是撒但试探人的典型模式:挑动肉体(食物)、名誉与炫耀(奇迹)、物质与权势(世上的荣华),从而动摇人的信心。耶稣以“经上记着说”——也就是引述《申命记》的话语每次回击,撒但便无计可施,只得离开,随后天使前来伺候耶稣。这个事件对信徒而言意义重大:若我们熟悉并坚守上帝的话语,就能抵挡撒但所施加的骄傲与贪欲试探。 张大卫牧师进一步说明,这场属灵争战一直延续到今天。当我们有意无意地想要“自己判断善恶”、或“以自我标准凌驾于圣经之上”时,实则正附和撒但的逻辑。即便在教会内部,也可能出现这种现象。福音书里法利赛人和文士抵挡耶稣,拒绝承认祂的权柄,甚至说祂被鬼附、祂违背安息日,这表面披着宗教外衣,却恰恰是站在撒但一边。耶稣称他们为“毒蛇之种”,直言他们无法逃避地狱的刑罚;反倒是那些承认自己有罪、愿意悔改的税吏和妓女,却蒙了主的怜悯与拯救。 《犹大书》1章6~7节也提到那些“不守本位、离开自己住处的天使”,上帝用锁链把他们永远拘留在黑暗之中;有些堕落天使当下就被锁住,有些仍在游荡诱惑人,成为邪灵。《约伯记》1、2章里,撒但以“控告者”身份出现,对上帝说:“约伯岂是无缘无故敬畏你?你若夺去他的一切,他必定当面咒诅你!”于是上帝许可约伯遇到种种苦难。通过这件事,我们看见撒但的“控告”和苦难有时会临到义人,但同时,也看到约伯依然在苦难中敬畏上帝,最终证明撒但的指控是虚假的。张大卫牧师借此说明,上帝为何不马上消灭撒但,也部分允许它活动:撒但控告“人都是有条件才信上帝”,而上帝让苦难发生,反倒在信徒身上彰显更真实的信心,使撒但的指控彻底破产。 从人的角度看,这确实难以理解并痛苦不堪。张大卫牧师指出,我们可能也会困惑:“上帝为何不一下子把撒但灭掉?”但《约伯记》的结局中,约伯比从前更深经历上帝,物质也被加倍赐福,更重要的是他的灵性更成熟。同理,当我们经历试探与苦难,若能持守在话语和祷告中,便能胜过“撒但的控告”。这也正是主祷文里“不要使我们遇见试探,救我们脱离凶恶”背后的真实含义。张大卫牧师强调:“试探不可能完全没有,我们要祈求在试探里得胜!” 综而言之,撒但就是“路西弗,早晨之子”,那原本是天使长,却骄傲背叛,如今寻机吞吃人的大仇敌。然而,耶稣基督在十字架上已经揭露且击败它,最终的审判也早已为它预备。张大卫牧师提醒道:“我们绝不能忘记这一事实。撒但必定失败!”主对门徒说:“我曾看见撒但从天上坠落,像闪电一样”(《路加福音》10章),预示它的败局已定。信徒能奉耶稣的名赶逐邪灵,可是这权柄只有那些谦卑顺服基督、跟从祂脚踪的人才能行使。撒但是因骄傲而堕落;信徒则要因效法耶稣的谦卑而得胜。 3. 信徒的应对与属灵的得胜 张大卫牧师反复强调的结论是:信徒必须倚靠主的教导和圣灵的大能,勇敢抵挡并胜过撒但的权势。前面所提的《创世记》3、4章中人类堕落的起源、《以赛亚书》14章和《以西结书》28章里撒但的骄傲与被审判、《约伯记》的试炼、《启示录》12章的属灵争战,全都与“上帝的救恩历史”息息相关。上帝为了拯救人类、赐人脱离撒但谎言的自由,差派了祂的儿子。耶稣基督作为“第二个亚当”,推翻了第一个亚当的失败,完全胜过撒但的试探,并在十字架上作了完美的赎罪祭。张大卫牧师说:“这正是我们祈求‘不要使我们遇见试探’的根基,也是在基督里我们所享有的奇妙特权。” 主祷文里“不要使我们遇见试探,救我们脱离凶恶”的祈求,也可视为:“上帝啊,求你保护我,脱离蛇的诱惑、撒但的欺骗,并以圣灵掌管我心中的骄傲和自我中心。”张大卫牧师鼓励信徒每天都要实际地这样祷告,因为无论我们在教会中有多老练,每个人心中仍潜藏着来自撒但的“基因”,那就是随时想要抬头的骄傲欲望。一旦它冒出来,我们就要赶紧跪下呼求:“主啊,我愿意让出我作王的宝座,唯独祢才是我生命的主。” 当然,这条路绝不轻松。耶稣在客西马尼园里也曾艰难地祷告:“我父啊,倘若可行,求你叫这杯离开我。然而不要照我的意思,只要照你的意思。”张大卫牧师指明,这就是真实信仰生活的写照:真正的顺服,是放下“我的心意”,去成全“上帝的旨意”。若这件事轻而易举,那么所有人都能做到了。问题是“魔鬼往往在最薄弱处猛烈攻击”,并以“我帮你立刻解决一切”“这没什么大不了”之类的甜蜜谎言来迷惑人。这时,信徒需效法耶稣,坚决说:“不要照我的意思,只要照祢的意思”,并借着不间断的祷告、灵修以及在教会共同体的彼此代求与劝勉,继续打那美好的仗。 张大卫牧师进一步补充:“我们天生就是要在上帝面前谦卑俯伏的受造物,但撒但不断蛊惑我们‘自己判断善恶’、‘自己登上宝座’。骄傲之路看似甜美,却通向灭亡和灵魂的死亡;而谦卑之路起初艰难,却通往永生与复活的荣光。耶稣就是这样走过,之后复活得荣耀。我们也当如此效法。”这正与《腓立比书》第2章6~11节所讲的“基督耶稣的心”为核心:主耶稣本有上帝的形象,却虚己,取了奴仆形象,并顺服至死,因此被赐予超乎万名之上的名。谦卑顺服正是“神国度”的精髓,撒但无从效仿。 然而,若只停留在“头脑认知”层面,我们仍容易在生活中再次跌入撒但的陷阱。为防止这种情形,张大卫牧师大力强调“圣灵充满”与“话语充满”。耶稣在旷野试探时,每一次都用“经上记着说……”击退撒但;我们同样需要用上帝的话语照亮自己,正视《创世记》3、4章揭示的人性堕落事实,并时常祷告说:“主,我是软弱的。我的里面也有撒但播下的骄傲与贪婪。惟愿祢的道洁净我,不要让我陷入试探!”圣灵会将上帝的话语活化在我们内心,当我们不断用真理光照、并为自己私欲悔改认罪时,骄傲自然被挪去,我们就能以“以上帝为中心”的方式去作判断和抉择。 此外,张大卫牧师还强调另一个关键:“我们并不孤单,教会共同体与我们同在。”撒但经常想把人孤立,使人独自承受试探和挣扎——人一旦落入孤军奋战,便会渐渐远离真理,甚至自以为是。但若把苦恼、忧虑坦白分享给牧者、同工、小组长或属灵同伴,让自己的光景被置于“光明中”,那么撒但的黑暗诡计就失去藏身之处。正如光一来,黑暗必然消散;而若有人始终把罪或软弱隐藏,魔鬼就有可乘之机。《雅各书》也说“你们要彼此认罪,互相代求”,目的在于让教会在彼此敞开的状态下破除魔鬼的埋伏。 主祷文的集体宣告也有类似的力量。当教会一同颂念“不要使我们遇见试探,救我们脱离凶恶”时,这简短的一句就成为极其强大的属灵武器。耶稣亲自教导这祷文,其中蕴含极深的真理;若全教会同心合意祈求,圣灵必然大大安慰、赐力量。张大卫牧师说:“主祷文既是教会群体的祈祷,也是个人的祈祷。教会应当成为一起抵挡撒但的属灵军队。”当我们在祷告与研经上持续操练,就会在实际生活中也经历胜过罪与骄傲的得胜。 总之,从《创世记》3、4章对人类堕落的记载,到《以赛亚书》14章、《以西结书》28章关于撒但如何因骄傲而堕落,再到《启示录》12章的天上战事,我们看见撒但不断利用人原本就有的弱点,煽动“我要自定善恶标准”的那颗骄傲之心。但耶稣却以彻底的谦卑、顺服至死扭转了局面;信徒也能在祂的得胜中同得胜利。若我们坚心祈求“不要使我们遇见试探,救我们脱离凶恶”,并时常回到话语中,撒但就无法真正掌控我们。 张大卫牧师总结:“我们的争战已经是得胜之战。主耶稣摧毁了一切‘骄傲’,并替我们付清罪债。然而,在我们还活在肉身之日,撒但如吼叫的狮子,四处寻找可吞吃的人,所以我们仍要警醒。但不必惧怕,因为光明的主与我们同在,黑暗永远无法胜过祂。”当我们实际操练把耶稣的胜利据为己有,日日在灵修与祷告中谨慎自守,就能更多经历与罪断绝、与撒但分离的自由。 因此,人当为起初想“做上帝”的罪心悔改,相信耶稣十字架所成全的救赎,并在圣灵带领下追求圣洁。正如张大卫牧师所言,这便是基督教核心教义,也是一切属灵生活的关键——“你们当以基督耶稣的心为心”(《腓立比书》2章)。基督的心从不骄傲,祂以至死的顺服赢得全胜;而撒但无法模仿也无法得胜。故此,信徒要警惕错误的自信或自以为义,常常省察自己,无论在何种境况都承认“上帝才是善恶的主宰”,我们只不过是受造的儿女和管家,当履行自己当尽的本分。 最后,张大卫牧师提醒,切勿过分惧怕撒但,也不可无视撒但的存在。撒但确实是人的仇敌,会借政治、权力等展开攻击,我们当保持防备。但我们也知道在基督里已经得胜,无须惧怕。只要我们认识那位谦卑至极的耶稣,并且坦然宣告并遵行祂的话,撒但就束手无策。“主祷文的能力”尤其不可小看,其中结尾“因为国度、权柄、荣耀,全是你的,直到永远”更是大能的宣告,让我们知道谁才是永远的真正主宰。 当我们综观以上内容,便会发现《创世记》3、4章所载的人类堕落,并非只是一段“过去的事件”。它反复在每个人心中上演,昭示我们骄傲与悖逆会带来多么深重的破坏;但也同时见证了上帝藉耶稣基督所成就的救赎何其宏大。上帝开启了一条道路,好让我们能回到最初受造时的圣洁。张大卫牧师强调,若我们选择跟随主,就要“用谦卑代替骄傲、用顺服代替悖逆、用光明代替黑暗”;这样,在每天的试探之中必能得胜,并最终获得永远的生命。 因此,他以劝勉作总结:信徒对主祷文里“不要使我们遇见试探”这句祈求,务必要认真对待。张大卫牧师说:“我们要时时用话语、祷告武装自己,并在教会团契的彼此光中敞开分享,杜绝骄傲所留下的破口。”如此一来,无论撒但在历史的角落如何兴风作浪,终究是个失败者,无法拦阻我们走在神指引的道路上。纵然当今世界混沌,人心价值多元,教会也面临各种挑战,只要我们始终坚信“善恶的主权不在于人,而在于上帝”,真理必使我们得自由。 最终,张大卫牧师想传达的结论十分明了:“每日默想《创世记》3、4章的教训,并且记得撒但如何因骄傲而堕落在《以赛亚书》14章、《以西结书》28章、《启示录》12章,以及如何在《约伯记》中控告人与在旷野试探耶稣的事例。勤背并操练主祷文,使它成为你实际的祷告,如此就能在各种诱惑中得胜。”这是他对信徒清晰的勉励和诠释,也是我们观看《创世记》3、4章的核心角度。与骄傲堕落的路西弗相对,比之,耶稣选择极度谦卑,故而获得“超乎万名之上的名”。这对比传递给信徒的功课是:自高终将坠入阴间深渊;自卑蒙恩者则必享永生。若牢牢持守这个真理,胜过骄傲的试探,便能结出神儿女该有的果实。愿众信徒都能一同行走这条道路。阿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