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기독교 지성의 거인으로 불리는 **C.S. 루이스(C.S. Lewis)**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변화시키시는 과정을 ‘집 수리’라는 탁월한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대다수의 인간은 그저 지금의 삶에서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는 수준의 ‘살만한 오두막’으로 남기를 고집합니다. 적당한 도덕성과 안락함에 안주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장엄합니다. 그분은 단순히 낡은 벽지를 바르는 임시방편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라는 낡은 가옥을 완전히 철거하시고, 그 자리에 당신께서 친히 거하실 거대하고 영광스러운 **’궁전’**을 재건축하십니다. 이 과정은 때로 뼈를 깎는 아픔과 익숙한 습관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이는 우리를 ‘조금 더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수준을 넘어, 존재 자체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내시는 은혜의 역설적 신비입니다. 이러한 치열한 재창조의 드라마와 영적 신분의 근본적 변화를 가장 완벽하게 선포한 성경이 바로 사도 바울의 로마서 6장입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깊이 있는 성경 묵상을 통해, 우리는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사건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뒤흔드는 생명력 넘치는 복음이 되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 죄의 무덤을 딛고 일어선 새로운 존재: 칭의(Justification)의 신비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의 문을 열며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가슴 벅찬 선언을 던집니다. 이는 단순한 감상적 위로나 일시적인 도덕적 결단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소속과 호적이 영원히 이동했음을 공포하는 우주적이고 법적인 사건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기독교 구원의 본질을 날카로운 신학적 통찰로 꿰뚫어 봅니다. **칭의(Justification)**란 인간의 추악한 죄악을 적당히 가려주는 값싼 면죄부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온전히 연합되는 세례를 통해, 우리의 ‘옛 자아’가 이미 장사 지낸 바 되었음을 확증하는 하늘의 판결문입니다.
오늘날 척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성도는 자신의 반복되는 실수와 연약함 때문에 ‘과연 내가 구원받은 자인가’라는 깊은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칭의의 진리는 우리 영혼의 심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닻을 내려줍니다. 나의 현재 상태나 기복 심한 감정의 파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나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자’**라는 불변의 정체성을 부여받았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합법적으로 지배하거나 정죄할 권리가 없는, 전적인 은혜의 통치 아래로 옮겨졌다는 소식은 우리 삶의 토대를 다시 놓는 가장 거대한 영적 전환점이 됩니다. 바울의 외침처럼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사실은 방종을 위한 빌미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걷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숭고한 열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죽을 몸을 다스리는 맹렬하고 거룩한 영적 전투(Spiritual Warfare)
비록 우리의 영적 신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궁전이자 빛의 자녀로 바뀌었을지라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과거 오두막 시절의 낡고 부패한 습관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사도 바울이 굳이 **’너희 죽을 몸’**이라는 표현을 쓰며 죄가 육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강력히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그의 강해를 통해, 구원이란 예수를 믿는 즉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안락함만이 가득한 온실 속의 삶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오히려 구원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매일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맹렬한 **’영적 전투’**의 개시를 의미합니다.
이 고단한 전투는 인간의 알량한 의지나 결단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매 순간 자각하고, 살아 숨 쉬는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할 실제적인 하늘의 힘을 얻게 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사소한 실패를 조롱하며 우리가 여전히 죄의 비참한 노예인 것처럼 속이려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한 패배자의 기만이자 불법 점거일 뿐입니다. 숨 막히는 일상 속에서 내 삶의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이전되었음을 선포하며, 성령을 의지하는 반복된 순종과 훈련으로 몸을 다스리는 것이 거룩한 **성화(Sanctification)**의 산맥을 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는 율법의 채찍 아래서 두려워하는 종의 복종이 아니라, 은혜의 날개 아래서 자발적으로 맺어가는 거룩한 사랑의 훈련입니다.
🛡️ 불의의 도구에서 세상을 치유하는 ‘의의 무기’로
바울이 제시하는 성화의 과정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으려는’ 소극적이고 수비적인 태도에 머물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 13절은 우리의 지체를 단호하게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촉구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의 손과 발, 시선과 언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이 결국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가’가 삶의 영원한 가치를 결정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몸이라는 정교한 도구는 결코 주인이 없는 중립 지대에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옛 정욕과 세상의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그것은 타인과 자신을 파괴하는 불의의 도구가 되어 결국 ‘사망’이라는 절망적인 보수를 받게 됩니다. 반면, 기쁜 마음과 자발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질 때, 우리의 연약한 육체는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낳는 가장 강력한 의의 무기로 탈바꿈합니다. 죄의 종으로 살며 쥐게 되는 결과는 영원한 단절뿐이지만, 기꺼이 하나님의 종이 된 자에게는 영생이라는 찬란한 선물이 거저 주어집니다. 따라서 성도의 참된 삶이란, 매 순간 나의 전 존재를 빛의 무기고에 자원하여 내어드리는 벅차고도 거룩한 헌신의 연속입니다.
🌍 나를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의 위대한 사명
바울의 이 가슴 뛰는 선언은 개인의 윤리적 수양이나 골방 안의 사적인 경건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의의 무기로 벼려내신 궁극적인 이유는, 상처 입은 세상 속으로 과감히 침투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생명력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거룩한 사명이 반드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제적인 연합의 열매로 나타나야 함을 지속적으로 일깨웁니다. ‘나 홀로 구원’이라는 이기적인 신앙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영적 순결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곁에서 섬기고, 벼랑 끝에 선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진리를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의의 무기’로서 기능을 다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과거의 실패나 죄책감에 발목 잡혀 한탄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너 영광스러운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기에, 세상의 두려움이나 썩어질 욕망에 매이지 않는 하늘의 담대한 자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이 지배하던 어둠의 시대를 끝내고, 십자가에서 시작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 위대한 구원의 드라마 속에서, 날마다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의의 무기로 온전히 내어드리는 참된 기쁨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