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를 넘어 – 장재형목사

1. 예루살렘과 초대 교회의 역사

예루살렘은 성경 속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로 등장한다. 구약 시대부터 예루살렘은 다윗 왕국의 수도였고, 솔로몬 왕이 이곳에성전을 지었으며, 여러 왕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영광과 쇠퇴의 역사를 함께 품었다. 이런 배경을 알아야 사도행전에서 일어나는일련의 사건들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으로 불리며, 초대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던 장면(행 1:4)은예루살렘이 역사의 출발점이자 복음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는 거점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그곳을 발판 삼아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고, 3천 명, 5천 명씩 회심자들이 늘어나는 역사적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성전과 공식적인 종교 체계 안에서 편안하게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예루살렘은그리스도를 죽였던 종교 지도자들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했으며, 기독교 신앙을 가혹하게 박해하는 본거지이기도 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중심 예배에서 쫓겨나 가정교회, 즉 ‘집에서 드리는 예배’ 형태로 전환해야만 했다. 마가의 다락방 같은 장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 아닌, 집과 같은 사적인 공간을 거룩하게 구별해 예배드리며 기도에 힘썼다. 이러한 역사는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성령 안에 모여 있는 성도들의 모임임을 잘 보여준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가 거세지자,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핍박은 스데반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로서,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리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랑과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스데반의 죽음은 교회 공동체에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겼지만, 동시에 복음이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흩어짐’이라는 형태로 확장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처럼 ‘핍박’을 통해 새로운 부흥이 시작되는 역설적인 역사는 성령의 섭리와능력을 잘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를 거듭해서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성령의 능력, 복음의 능력, 그리고 희생과 순교를 통한 확장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뚜렷한 단계와 순서를 갖춘 명령으로, 복음 전파가 먼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지고, 결국은 땅 끝, 즉 모든 민족으로 뻗어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싶어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모여 있는 상태에서는 이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박해’라는 외부적 요인이 작동해 예루살렘 안에만 안전하게 머물러 있던 성도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를 두고 “하나님은 박해조차도복음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내용은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할 때 교인 수가 3천, 5천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건은 복음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예루살렘 안에서만 그 은혜를 누리고자 했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적극적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이 명하신 ‘나가야 한다’라는 사명을 실천하기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편으로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예루살렘에 머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와 이어진 박해를 통해 성도들을 흩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도행전 8장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흩어지는 교회’는 곧 ‘나가는 교회’가 된다. 나아가야 할 때를 놓쳐 머물러 있는 교회에게, 주님은 종종 뜻하지 않은 방식을 사용해 흩어짐을 주시기도 하는데, 이는 복음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결코 막을 수 없는 성령의 열정과 역동성을 드러낸다.

박해를 통해 흩어진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했다. 이는 단순한 도피 행위가 아니었다. “흩어진 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행 8:4)는 말씀처럼, 자신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치면서도 중단 없이 복음을 전한 것이다. 흩어졌다고 해서 신앙이 식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흩어진 곳’에서 새로운 부흥이 일어났다. 가정집을 예배 장소로 삼는 ‘가정교회’ 형태는 오랜세월을 거치며 지하교회, 혹은 박해 지역에서의 교회 형태로 계승되기도 한다. 교회는 결코 건물에 국한되지 않으며, 건물이 없어도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임을 역사는 증명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초대교회 역사의 본질, 즉 박해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복음전파와 성령 공동체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하며, 이를 현대 교회가 다시금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분열의 교훈

예루살렘과 더불어 구약의 역사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주제는 바로 이스라엘의 분열이다. 다윗 왕국은 12지파가 하나로 뭉쳐 통일왕국의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을 지어 웅장한 하나님의 처소로 삼았다. 그러나 솔로몬말기에 영적 부패와 우상숭배가 깊어져, 결국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갈라지게 된다. 열 지파가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두 지파가남유다를 이었다. 이 ‘분열 왕국’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멀어지면서 모두 결국에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8세기에, 남유다는 주전 6세기에 바벨론에 의해 망했다. 솔로몬이 수많은 첩들을 두면서 이방 우상이 유입된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온백성이 우상숭배에 물들어 버린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우상숭배와 불순종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에게 비참한 결말을 가져왔고, 수많은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끌려갔다. 바벨론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정복 지역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그 민족적, 종교적 결속을 약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그 땅에는 다른 이방 민족들을 이주시켜, 혼합 정책으로 민족의 동일성을 약화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혼혈 민족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이었다. 남유다 백성들은 그들을 ‘순수 혈통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멸시했고, 이로 인해 ‘사마리아와 유대’라는 구분이 나타났다. 예수님 시대에도, 정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하다 여겨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하여 유대에서 갈릴리로 이동할 때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으려 하며 먼 길을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마치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신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말을 걸고 그 영혼을 변화시켰다. 이 대화는 예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혈통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눅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참된 이웃 사랑은 혈통이나 종교적 정체성이 아니라 마음과행함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인이 가장 혐오하는 집단이었는데, 그가 이웃을 돕는 이야기를예수님이 비유로 드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이 어떤 장벽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지명이 순차적으로 언급된다. 이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오래된 갈등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확장은 사마리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시작된 복음이 자연스레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에까지 전파되어야 했으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실제로 사마리아를 향해 쉽게 나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닥친 박해가 촉매제가 되었다.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는 말씀은 ‘역사의 역설’을 보여준다. 편견과 갈등 때문에 쉽게 찾지 못했던 사마리아 지역에, 결국 성도들이 ‘핍박’을 계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빌립 집사의 전도로 인해 수많은 이가 복음을 듣고, 큰 기쁨을 누린다(행 8:8).

장재형 (장다윗)목사는 이 장면이 분열된 민족과 상처를 치유하는 복음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구약에 뿌리 둔 분열과 적대감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초대교회 시절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도 우리 안에는 수많은 편견과분열이 존재한다. 교단 간 분열, 신학적 갈등, 민족적·정치적 대립 등 다양한 형태로 분열이 반복되며, 서로를 정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그 장벽들을 복음으로 무너뜨리신다.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증오와 멸시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앞에서는 부서져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실제 사역 현장에서, 분열된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이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한 화해와사랑임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그 어떤 혼합과 멸시의 역사라도 복음 앞에 무너지고 진정한 연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가 가져온 박해가 사마리아 복음화의 문을 열었듯이, 우리의 아픈 역사도 복음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음을 계속 설파한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저질러 망했지만,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은 끝내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른 뼈 같았던 그들이 에스겔 37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큰 군대로 일어섰고, 분열된 두 막대기가 하나로 합해지는 예언도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영적 교훈이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분열의 아픔과 상처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다시 하나로 뭉쳐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거듭 주장한다. 사마리아와 유대가 화합하고, 나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사마리아를 넘어 복음은 이방 세계로까지 확대된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서 일으킨 대부흥은 신약시대 선교 확장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이후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그 역사를 확인하고,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게 교회가 점점 더 큰 지경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 결정적으로 주역이 되는 인물이 바로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된 ‘바울 사도’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의 대사도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스데반의 순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사울은 그 자리에 있었고,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의 표정을 보며 그 영혼이 흔들렸다고 많은 주석가들이 해석한다. 실제로 사도행전 7~8장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은 사울(바울)의 회심에 큰 영향을 끼쳤고, 결국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전파의 최전선을 담당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분열의 역사와 치유, 그리고 복음 확장’의 주제를 강조하면서, 교회 분열의 아픔이나 나라 간 갈등, 심지어 가정 안에서의 다툼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열의 이면에는 우상숭배나 불순종 같은 영적 요인이 깔려 있음을 지적한다. 겉보기에는 정치나 경제적 문제가 원인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질적인 해결책은 회개와 복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될 때 가능한 연합이 이뤄진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오랜 적대가 결국 복음으로 해결되었듯이, 현대에도 이 동일한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 분열의 벽들을 허무는것을 체험할 수 있다.

3. 현대 교회와 성령의 사명

사도행전 8장은 ‘큰 핍박’이 일어나자 교회가 흩어졌고, 그 흩어진 자리에서 새롭고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는단지 고대 교회의 역사적 사례가 아니라, 현대 교회와 우리 개인 신앙의 길을照明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교회의 존재 목적은 결국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역설한다. 교회가 모이는 것은 중요하고 필수적이지만, ‘나가는것’ 또한 동일하게 중요하다. 모이고 흩어짐이 반복되는 유기적 순환 속에서 복음 전파가 완성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이라’고 하신 것은 성령을 받고 훈련받아 파송되기 위함이었고, 제자들은 결국 예루살렘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지며 복음을 증거했다.

현대 교회도 이 원리를 배워야 한다. 예배당 건물 안에서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 한때의 영적 성장과성령 체험을 ‘보존’하려는 의도만으로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 복음은 교회 안에 갇혀버릴 수 있다. 오히려 박해가 왔을 때 초대교회가 어떻게 흩어졌는지, 또 그 흩어짐이 어떻게 사마리아 전도와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었는지 깊이 묵상할 때, 오늘의 교회가 세상 속으로 파송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는 모이되, 반드시 흩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많은 성도가 한곳에만 모여 안주하는 대신, 직장과 학교, 지역 사회와 해외 선교지로 파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빌립 집사 역시 중요한 본보기다. 빌립은 사도들이 아니었다. 그는 일곱 집사 중 한 명에불과했고, 주로 구제와 봉사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빌립이 바로 사마리아로 내려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큰 부흥을일으켰다. 이는 곧 복음 전파의 주역이 꼭 사도나 전문 선교사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준다. 성령을 받은 모든성도가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표적과 기적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에서의 직분이 무엇이든, 성령으로 충만한 평신도도 강력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 현대 교회는 주일 예배 위주의 행사성, 특정 직분자들만의 사역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스스로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자각하고, 어디로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 장재형 목사 역시 이런 ‘만인제사장’의 개념을 핵심으로 삼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평신도들의 헌신이야말로 교회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임을 자주 강조한다.

또한 8장 후반부에서 빌립은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한다(행 8:26-40). 이 장면은 복음이 이스라엘 지역과 사마리아를 넘어 아프리카로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전 세계로 향해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 사마리아인, 그리고 이방인으로 이어지는 전도의 점진적 확장은 하나님의 마음이 “모든 족속과 열방”을 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은 분명하다.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특정 문화권에서, 혹은 소수민족과 핍박받는 공동체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진정한 ‘안디옥 교회’가 되려면,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의 균형을 잡고, 그 흩어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임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역사를 보면, 서구 교회들도 한때 강력한 성령의 부흥을 경험하고 전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했지만, 어느 순간 내부적으로세속화와 영적 침체가 깊어져 그 불이 꺼지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며 스스로를보호하려는 분위기가 짙어지면, 초대교회처럼 밖으로 나아가려는 열정이 약해지기 쉽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은 ‘핍박’ 앞에서도 도망만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확장하는 기회로 삼아왔다. 역사 속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지하교회 등이 그 예다. 중국, 북한, 중동 등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부흥을 경험하는 사례들은, “교회를 이기는음부의 권세가 없다”(마 16:18)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증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단순히 모이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머지않아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수차례 역설한다. 성령의 권능을 받은 교회는 ‘보냄을 받은 교회(Apostolic Church)’라는 뜻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말 속에는 ‘보냄받은 자’라는 의미가 있으며, 예수님 역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세상에 보내노라”(요 17:18)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교회는 파송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성도들은 각자 부름받은 사명에따라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파송은 결코 목회자나 교단의 ‘명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개개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스스로일어나 복음을 위해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이 때로는 박해나 환란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스데반의 순교가 바울의회심에 영향을 끼치고, 사마리아 전도에 불을 붙인 것처럼 말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큰 슬픔이 ‘사마리아의 큰 기쁨’으로 바뀌는장면(행 8:8)은, 교회사의 흐름이 언제나 우리의 기대나 편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과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성령의 가장 근본적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기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제자들은 도망갔고, 군중은 조롱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이후 성령 강림을 경험한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언했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복음은 계속 확장되어 전 세계 곳곳에 교회를 탄생시켰다. 결국 박해는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기폭제가 되었고,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는 옛 말이 재확인된 것이다.

사도행전 8장 1절부터 8절까지가 보여주는 교훈은, 우리 삶 속의 시련과 아픔조차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발판으로 변할수 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커지는 가운데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머물 때, 하나님은 스데반의 순교 사건과 큰 박해를허용하셨다. 그 결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그 이후 땅 끝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그리고성령의 역사를 깨닫는 것이 바로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메시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그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마음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편견과 적대감에 사로잡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스데반이 보여준 용서와 사랑, 빌립이보여준 적극적인 복음전도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생명력 넘치게 부흥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분열도, 박해도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진전에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성도 개개인이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그 부르심을 따라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가,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듯이, 현대 교회도 작은 순종의 씨앗이 거대한 선교의 열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교회가 프로그램과 건물을 확장하는 것에치중하기보다, 박해받고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서고, 지구촌 곳곳에서 고난받는 성도들과 함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큰 기쁨’이 싹트고, 흩어진 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모인 자들이 다시 흩어지면서, 복음이 계속해서 전진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사도행전적 신앙의 흐름, 곧 ‘흩어짐을 통한 복음화’, ‘분열을 뛰어넘는 연합’,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는 성령 공동체’를 설파하며, “우리는 누구든지 사도로, 선교사로, 복음의 증인으로 파송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예루살렘 교회가 누렸던 뜨거운 부흥과 스데반의 순교가 가져온 흩어짐, 그 흩어짐이 열매 맺은 사마리아의 회복, 그리고 궁극적으로 땅 끝까지 가 닿는 선교의 여정은 장재형 목사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신학이자 비전의 골자다. 현대 교회가 이 역사에서 배운다면, 더 이상 내부적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 끝을 향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결국 사도행전의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매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반복되며, 동시에 끊임없이 확장된다. 스데반은 죽었으나, 스데반을 통해 박해가 시작되었고, 그 박해로 교회는 흩어졌으며, 흩어진 자들이 결국 세계를 복음으로 뒤덮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벽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받게 된 것이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8)라는말씀처럼, 박해와 슬픔이 큰 부흥과 기쁨으로 변화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위대함이며, 어떤 좌절이나 절망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재형 목사가 주장하는 현대 교회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진정한 부흥은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견뎌내며, 심지어 그 시련을 통해 더 넓은 선교의 지경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교회가 편안하게 머무르고자 할 때,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안일함을 뒤흔드는 상황을 허락하시기도 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흩어져야 할 때가 되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바람이 불 때 민들레 홀씨가 더 멀리 날아가듯이, 교회도 불어오는 역경의 바람이 오히려 복음을 멀리 퍼뜨리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성령은 우리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변화시키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우월감이나 편견, ‘우리는 택함받았으니 저들은버림받았다’ 같은 교만한 태도가 복음 전파를 막는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끝까지 그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랑이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고(행 7:60), 그 사랑과 기도가 사울(바울)의 가슴을 울렸으리라 추정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보여준 전도와 사랑은 박해 속에서 빛나는 ‘하나님 나라의 전형’이었다. 오늘날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다시금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하며,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순교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교회의 사명은 결코 작은 일로 축소될 수 없다. 예루살렘이 가진 역사적·영적 의미를 파악하고, 예수님이 친히 명하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사도행전적 순서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한 개인의 회개와 중생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는 큰 꿈을 가지고 계신다. 다윗의 영광이 드러났던 그 시절이나, 솔로몬의 우상 숭배가극에 달해 나라가 쪼개졌던 시절이나, 결국은 역사가 하나님의 나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셨을 때에도, 하나님 나라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받았음에도 전 세계에 교회를 세웠던것은 그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차례다. 박해나 시련, 분열의 아픔에 멈춰 서기보다, 성령이 지시하시는 길로 흩어지고 파송되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이 원리를 잃어버릴 때 영적으로 정체되고, 때로는 인간적 분쟁에 매몰되기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세계로 흩어졌던 그 거대한 흐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복음의 광대함은, 우리가 그토록 분열되고 갈라진사마리아까지 찾아가며, 나아가 땅 끝으로 달려갈 때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오늘날 교회가 진정한 ‘안디옥 교회’로 일어서려면, 이 복음의 동력과 성령의 바람을 붙들고, 다시 한 번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렇게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교회는 편안함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교회의 본질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박해가 오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성령은 교회를 더 온전한 모습으로 빚어가신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이 편만히 전해지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말씀이 이 땅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그 광경이 ‘현대 교회가 꿈꾸는 비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가정, 직장, 도시, 국가, 나아가 온 열방까지, 복음의 기쁨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때, 교회는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완성한다. 분열과 박해가 우리를 겁주고 낙심시킬 때조차, 우리는 스데반과 빌립, 그리고 바울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를 충실히 지키면서, 성령의 부르심 앞에 순종했다. 스데반은 순교로, 빌립은 사마리아 부흥으로, 바울은 이방 선교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 받았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시대와 장소, 직분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주님의 크고 작은 사역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자들이다.

이렇게 볼 때, 사도행전 8장에 담긴 메시지는 너무나도 풍성하다.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 스데반의 순교와 그로 인한 박해, 성도들의 흩어짐,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큰 슬픔과 큰 기쁨이 교차하며,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의 연약함과 죄를 넘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준다. 특별히 분열된 민족의 상징이던 사마리아가 ‘큰 기쁨의땅’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복음이 가진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장재형 목사는 이 사실을 모든이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며,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다시금 붙드는 날에 이 땅의 수많은 갈등과 상처 역시 치유될 것이라는 소망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장재형 목사가 사도행전 8장을 통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교회가 박해를 받더라도 결국 복음은 더 넓은 지경으로 확장된다. 둘째, 오래된 분열과 상처도 복음 앞에서 치유되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셋째, 성령의 부르심은 특정인에게만 주어지지 않으며, 평신도와 지도자 모두가 복음 전파의 주체로 파송될 수 있다. 넷째,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전해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다. 현대 교회가 이 진리를 붙들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결단할 때, ‘큰 핍박’도 ‘큰 기쁨’으로 바뀌는 역사가 여전히 일어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쫓겨나가정교회로 전환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이, 오히려 세상을 향해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었듯이, 오늘의 교회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령의 역사와, 원수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사도행전적 비전의 핵심이자, 현대 교회가 다시금 붙들어야 할 부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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